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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ORTLIST 2022 : 마음에 기대 선을 긋다 02
2022-08-10 14:43
김숨, 떠도는 땅 (2020, 은행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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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7쪽
“엄만 내가 러시아인이래요. 아빠가 러시아인이니까요. 그런데 마리안나 선생님은 내가 조선인이래요. 엄마가 조선인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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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쪽
갓난아기와 황 노인. 금실은 문득 그 둘이 ‘한 인간’만 같다. 한 인간의 최초와 최후가 함께 열차에 실려가는 것만 같다. 열차가 마침내 최종 목적지에 도달했을 때 그 한 인간의 최초는 사라지고 최후만 덩그러니 남아 있을 것 같은 생각마저 든다.

34쪽
“내 아버지는 돌아가시기 전에 고향 물을 한 사발 마시는 게 소원이라고 하셨어요. 아버지는 러시아에 와 채송화 꽃씨를 뿌리셨어요. 딸들이 채송화 꽃을 보고 자라라고요.”

42쪽
"내 어머니는 그러셨지요. 사람 사는 데는 다 똑같다고요. 큰 산이 있는지, 작은 산이 있는지, 냇물이 흐르는지, 강이 흐르는지 그것만 다르다고요."

48쪽
근석은 러시아 땅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러시아 말을 조선말보다 잘했지만 모습은 어쩔 수 없는 조선인이었다.

58쪽
"너희는 어째서 너희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는 거야? 내가 너희라면 고향으로 돌아가겠어."
"내 고향? 내 고향은 여기야. 나도 너처럼 여기서 태어나 여기서 자랐지."

60~61쪽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조선식 성과 러시아식 이름이 혼합된 이름을 가진 두 아들은, 아버지의 바람대로 조선인들이 선망하는 직장을 얻어 웬만한 러시아인들보다 안정적으로 살았다. 그는 조선의 독립을 요원한 것으로 보았다. 고향으로 돌아가 일본인들의 개로 사느니 낯선 러시아 땅에 뿌리를 내리고 사는 게 낫다고 확신하면서도 조상의 제사를 지내며 철저히 조선인으로 살았다. 러시아인들에 대한 그의 태도는 이중적이어서, 그는 큰 나라에서 태어난 러시아인들을 부러워하면서도 그들이 게으르고 예의범절을 모른다고 명시했다.

70~71쪽
"결국은 우리 땅을 빼앗으려는 수작 아니겠어요?"
"땅이요? 우리에게 땅이 있었나요?"
"돌밭을 감자가 나고 배추가 열리는 땅으로 일구었으니 우리 땅이지요."

99쪽
“우리가 아이를 낳으면 그 아이는 뼛속까지 러시아인이어야 해.”
”우리 아이가 자라서 낳은 아이는 영혼까지 러시아인이어야 하고.”

100~101쪽
“솔직히 난 내가 누군지 모르겠어. 조선인, 러시아인, 소비에트인민…..”
”그 셋 다 아닌가요? 당신은 조선인이지만 러시아에서 태어났어요. 러시아는 소비에트가 되었고요.”
”그 셋 다일 수는 없어.”

107쪽
“태어나서 지금까지 난 비자도 국적도 없이 살고 있어요. 어머니가 출생신고를 못해서 조선 국적자였던 적도, 일본 국적자였던 적도 없지요. 러시아 신민이었던 적도 없고요. 소비에트 인민증도 없으니 엄밀히 말해 소비엔트 인민도 아니지요.”

124쪽
“난 처음이 아니에요. 10년 전에도 열차에 억지로 태워졌어요. 다들 땅, 땅 하는데 난 어부예요. 바다에 그물을 드리워 물고기를 낚는 사람이지요. 10년 전 열차에 실리기 전까지 농사는 안 지어봤어요.”

210쪽
'요셉, 지금 어느 말로 생각하고 있지?' '어느 말로요?' 나는 외삼촌의 질문이 이해가 안 돼 되물었지요. 외삼촌이 내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다시 묻더군요. '러시아 말과 조선말 중 어느 말로 생각하고 있지?' 나는 그제야 내가 러시아 말로 생각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SHORTLIST 2022 : 마음에 기대 선을 긋다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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